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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EUNG CITY시흥역사문화유산

선사시대

구석기시대

구석기시대, 최초의 시흥 사람들은 누구 였을까?
인류 최초의 도구인 뗀석기를 만든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소규모의 무리를 지어 채집과 수렵생활을 하였고,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여 살았다. 한반도에서는 약 70만년 전에 구석기 문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한반도 곳곳에 그 생활의 흔적이 남아있다. 경기도의 경우, 임진강~한탄강 유역과 한강 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우리 시흥시에서는 계수동, 도창동, 매화동, 월곶동 등에서 여러 면석기와 찍개 등이 발견된 바 있으며, 구석기 유적으로는 장현공공주택지구 개발사업 시 시흥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능곡동 선사유적」 하단 구릉에서 유물층이 발견된 바 있으며, 몸돌, 찍개, 긁개 등의 뗀석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시흥시 일대가 일찍부터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음을 의미한다. 도시 개발과 더불어 발굴조사가 시행되면 시흥 지역 구석기 문화의 면모는 앞으로 더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의 시흥, 오이도 패총과 능곡동 마을
약 1만년 전, 길었던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신석기시대의 인류는 더 큰 규모의 집단생활을 이루면서 농경생활을 시작하고 정착하여 살게 된다. 농경과 정착생활, 간석기와 빗살무늬토기의 제작 등이 불러온 생활방식의 변화를 신석기 혁명이라 부른다. 특히 강가와 해안가는 풍부한 먹거리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집터로 애용되었고, 삼면의 바다와 풍부한 물길을 갖춘 한반도에는 신석기인들이 남긴 많은 집자리와 패총(貝塚:조개무덤)들이 남아있다.

서해에 접한 우리 시흥에서도 신석기시대 패총과 주거지(집자리) 유적이 확인 되었는데, 1980년대 시화지구개발사업으로 조사된 오이도(烏耳島) 유적,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능곡택지개발지구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능곡동 신석기 마을유적이 대표적이다.

2002년 국가지정유산 사적으로 지정된 오이도 유적은 웃살막 패총·가운데살막 패총·뒷살막 패총·신포동 패총 등 섬 전체에 패총이 분포하여, 시흥의 바닷가에 살던 신석기 사람들의 중요한 어로 영역이었음을 말해준다. 한편, 능곡동 유적은 능곡동 삼거리 뒷편의 해발 33m의 구릉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룬 집자리 24기기 분포하고 있어 큰 주목을 받았다. 능곡동 신석기 마을 유적은 집자리의 입지와 배치, 규모 등이 독특한 뿐만 아니라,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 되었다. 지금까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발견된 최대 규모의 신석기 시대 마을유적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오이도 유적과 능곡동 마을유적은 우리나라의 선사문화, 특히 서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문화 연구를 위한 훌륭한 자료인 동시에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시흥,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
B.C. 15세기를 전후하여 한반도에 사는 정착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농경 기술은 더욱 발전하며, 널리 퍼진 빗살무늬토기의 전통이 민무늬 토기 제작으로 바뀌는 등 생활양식의 면모가 크게 변화한다. 특히 오랫동안 석기 이상의 도구를 쓰지 못하다가 금속을 다루게 된 것은 인류의 또 다른 혁명이었다.

청동기시대는 청동을 이용하여 무기와 의기(儀器:의례용 도구)를 만들던 시기를 말하지만, 청동기시대라고 해서 석기가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청동기시대에는 금속자원의 희귀성 때문에 평지의 농경사회와 금속자원 생산지 사이에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으며, 청동기 제조를 담당하고 이를 소유하는 특수한 계급이 등장한다. 또한 자원에 의한 교역의 발달과 농업생산의 증대는 생활을 안정 시키고 인구 증가를 촉진시켜 도시문명 발생의 기초를 쌓았으며, 지역과 집단 간에 분쟁이 일어나면서 사회조직과 계급분화가 촉발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청동기시대의 사회적 분화, 계급화 현상은 무덤을 양식화 시켰고 특히 고인돌 (Dolmen, 支石墓)이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탁자식·기반식(바둑판식)·개석식(무지석식) 등의 3종으로 분류되는데, 특히 한반도의 고인돌 집중분포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특별한 현상으로 알려졌다.

우리 시흥시 지역에서도 계수동과 조남동, 군자동 외 다수 지역에서 고인돌이 발견 되었는데, 특히 경기도 기념물 103호로 지정된 조남동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상당히 대형에 속하는 크기이다. 시흥의 고인돌에서는 부장(副葬)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주변에서 집자리 등의 관련유적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남동 고인돌과 가까운 산지와 군자동 고인돌과 가까운 거모동 등지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거의 파괴된 상태) 일부와 민무늬 토기 조각, 간돌도끼 등이 발견된 바 있고, 능곡동 신석기 마을유적을 발굴조사할 때에도 파괴된 청동기시대 집자리 2~3기가 확인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시흥 지역에서 상당한 규모의 청동기시대 집단이 살아갔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인근의 광명, 의왕, 안산, 군포, 안양 등지에 분포한 다른 고인돌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이 지역 청동기시대 문화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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