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의 옛 염전
전통시대 시흥과 소금
- 어느 시대에나 국가 경제의 주요 역점이 되는 기간산업은 있기 마련인데, 전통시대 이래로 줄곧 주축을 이루고 있는 농업을 제외한다면, 소금 혹은 염업(鹽業)의 경우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인 소금의 중요성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부각되어 왔다. B.C. 1세기인 중국 전한(前漢) 때부터 소금과 철의 국가 전매를 언급했던 「염철론(鹽鐵論)」은 국가차원에서 소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아서 「고려사(高麗史)」 식화지(食貨志) 염법(鹽法)조에는 ‘국가의 수입 원찬 가운데 소금에서 나는 이익이 가장 크다’고 언급하고, 충렬왕 14년(1288)부터 각 도에 염세별감(鹽稅別監)을 파견하여 소금을 전매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 각 지역의 물산(物産)이 충실히 나타나지 않아 고려시대 시흥 지역의 정확한 면모를 알기는 어렵지만, 조선 초기의 「세종실록」 지리지 안산군 조에는 이 곳 사람들이 ‘어염(魚鹽)으로 생계를 삼으며, 염소(鹽所)가 5곳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같은 책 인천군 조에도 ‘염소가 6곳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고려사」 식화지에 ‘권세 있는 가문이 사사로이 소금을 거두어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소금과 관련된 시흥 지역의 역사는 적어도 고려시대, 혹은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고려시대 시흥 지역에 인주(仁州)이씨와 안산(安山)김씨, 두 거족(巨族)이 자리잡고 있었던 점은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안산군 조에 토산(土山)을 기록하면서 소금을 첫 번째로 꼽고 있으며, 인천도호부나 부평도호부 조에도 빠짐없이 소금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정은 조선 후기에 편찬된 각종 읍지류(邑誌類)에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어 조선시대 전 시기를 통하여 시흥 지역이 소금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군자염전과 소래염전
- 전통시대 우리나라의 소금 생산방식은 자염(煮鹽) 또는 전오염(煎熬鹽)으로 바닷물을 염전에 갈아 소금가마에 끓이는 방식이었다. 일본의 소금 생산방식도 우리나라와 같았는데, 중국이나 대만의 경우에는 제조 방식이 달라 햇볕을 쬐어 소금을 만드는 천일염(天日鹽)이었다. 개항 이후 중국의 소금이 국내에 들어오자 우리나라의 염업은 크게 타격을 받게 되었다. 맛과 품질은 자염이 더 좋았다고 하지만 물량으로도 경쟁이 되지 않았고, 소금을 끓이는 과정이 없는 천일염은 연료비가 없고 인건비도 상대적으로 적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리했다. 게다가 대한제국기에 일제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천일염 관영화 정책을 실시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자염은 차츰 자취를 잃게 되었다. 통감부는 1907년 인천 주안(朱安)에 천일염전을 시험하였고, 이후 천일염전을 축조하여 중국의 소금이 대항하고자 하였다. 천일염의 도입은 중국 소금으로부터 조선의 소금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지만, 그 내면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 첫째는 식민지 재정확보책으로 염업 관영화하여 재원을 확보하려는 것이었고 둘째는, 일제의 섬유공업이나 비료공업의 발전에 필요한 원료인 원염(原鹽)을 우리나라의 염전을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일제는 크게 4기(期)에 걸쳐 경기도, 평안남도, 황해도 등에 천일염전을 축조˙확장하였는데, 시흥 지역의 경우, 군자염전(당시 시흥군 군자면, 현 정왕동 일대)이 3기인 1921년에서 1925년 사이에 건설되었고, 소래염전(당시 부천군 남동면, 현 포동, 월곶동, 장곡동 일대)은 마지막 4기인 1934년에서 1937년 사이에 만들어졌는데, 시흥 지역에 대규모의 천일염전이 만들어진 것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환경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 1945년 광복 이후, 남한의 부족한 소금을 채우기 위해서 정부는 민간 염전의 개발을 적극 권장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공급의 과잉현상이 일어나 소금값이 폭락하고, 염전업은 불황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1961년 염 전매법이 폐지되면서 민영화 단계로 들어섰으나, 염전업의 불황과 도시화의 진전으로 인해 1968년 주안 염전의 폐염을 시작으로 1996년 소래염전이 마지막으로 폐염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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